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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잡생각

획일화

한그리 2011. 8. 17. 11:48

이런 기사를 하나 봤다.

요즘 아이들, 20년 전보다 창의력 부족

요즘 아이들이 20년 전보다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믿지는 않는다.
다만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가 줄어들고 그것이 고착화되는 것이겠지.

이 기사에서 부시가 행한 No Child Left Behind를 예로 들었다.
No Child Left Behind란 낙오하는 학생없이 모든 학생을 일정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교육정책이다.
취지는 좋다. 언뜻 보면 핀란드의 교육방침과 흡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기사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학생들의 창의력에는 독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맞는 얘기다. No Child Left Behind의 취지자체는 좋았으나,
그 목표와 방향이 전혀 효율적이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미국의 얘기일까?
전혀 아니다. 수많은 정책에 있어 미국을 그대로 카피하고 따라가는 한국실정은 오히려 더 심각하다.
따라하려면 제대로 따라하든지...

목표가 학생들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인데, 그 실력의 기준이 바로 획일화된 시험인것이다.
그리고 시험성적이 곧 실력이 되어버린다. 결국 목표는 학생들의 시험성적 끌어올리기가 되어버린것이다.

목표가 시험점수이다 보니, 답이란 결국 하나로 제한되어야 하고, 거기서 맞느냐 틀리느냐로 결론난다.
여기서 더 많이 맞은 놈이 잘하는 것이고 덜 맞은 놈이 못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서열화가 이루어진다.

게다가 아무리 다른 분야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일단 누군가 정한 분야에서 뒤쳐지면,
 공부 못하는 놈이 되어버린다.

결국 학생들에게 있어 여러가지 가능성보다는 특정한 분야에 하나의 정답만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지게 되고,
이것은 다양한 사고의 틀을 제한하고 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 정답을 얼마나 잘 찾느냐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
이미 정답은 하나로 나와있으니 이제 학생들은 그 정답을 어떻게 하면 잘 찾을까에 몰두하게 되고,
조금 지나면 정답'만' 일단 잘 찾으면 장땡이 되어버린다. 찍어서라도 정답만 맞추면 된다.
그래서 '찍는것도 실력이다.' 란 말까지 등장한다. 결국 '찍기 기술'까지 학생들에게 파는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좀 있다보니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정답을 잘 찾아내기 시작한다.
서열화가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제는 정답을 '빨리' 찾아내야 한다.
빨리 찾으면 안될만큼의 많은 양의 문제를 내어준다.
그러다보니 문제유형 및 공식대입이라는 기술이 발전한다.

"빠르고 정확하게!"
뭐 나쁘진 않다. 빠르고 정확해서 나쁠건 없잖아?
개성따윈 필요없다. 100명이 똑같은 공식에 똑같이 접근해서 똑같이 풀어도 상관없다.
그저 정답을 빠르게 알아내면 되는것이다.

사람은 역시 훈련에 의해 숙련도가 올라가는 동물이다.
이렇다 보니 또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답을 찾아낸다.
답은 이미 하나로 정해져 있으니 그것만 찾도록 훈련시키면 훈련받은대로 아주 잘 찾아낸다.

이젠 어쩐다?
그래. 이젠 문제를 쓸데없이 꼬기 시작한다.
아니면 학생들의 한계를 실험할 요량인지, 엄청난 양의 글을 외우게 한다.
다른 가능성따윈 두지 않는다. 그저 책에서 나온 그대로 외우고 써야 하는것이다.

자, 그럼 그러는 사이 정말 No child left behind가 되어있을까?
자, 그럼 이런 정책을 만들고 적용하는 사람들은 정말 이런 정책이 학생들에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걸까?

내친김에 이 기사도 한번 보자.

노벨상 7인 “항상 의심하라, 책 읽지 마라, 숙제하지 마라 … ”

많은 바를 시사하는 기사고 여기서도 창의력을 화두로 삼았다.
모든것에 의심하라고 한다. 심지어 책을 읽을 때에도 무작정 받아들이지 말란다.
그렇게 책을 읽느니 차라리 읽지 말라고 한다. 기계적인 숙제도 하지 말라고 한다.
기계적으로 숙제를 할 바에야 그 시간에 자신만의 상상의 시간을 가지라고 한다.

어째 이들의 주장은 현재의 교육현실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 다시 한번, 이런 정책을 고안해내고 적용하는 사람들은 과연 이것이 정말 학생들에게,
혹은 사회에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엉뚱하게 한번 방향을 잡아봤다.
그럼 이번엔 좀 오래되었지만 재밌는 기사를 살펴보자. 꽤 길지만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낭만적 거짓 vs 소설적 진실

언뜻 보기엔 위 창의력에 대한 내용과 별로 상관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관련이 깊다.
해당 기사에서 르네 지라르는 현대인의 욕망을 삼각형 구조로 풀어내고 있다.
주체 - 중개자 - 대상 의 구조로 풀어내고 있다.
이것이 지금 교육현실과 무슨 상관일까?

보통은 주체에게 있어 욕망의 대상이란 자연발생적일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지라르가 지적한것과 같이 현대인들의 욕망의 대상이 중개자의 간섭으로 인한 암시된 욕망이라면?

과연 저 중개자는 누가 될 수 있으며 암시된 욕망으로 그 중개자는 무엇을 얻을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된다.
사람의 욕망이란 너무나 다양해서 아마 그 수를 헤아리는 것 조차 불가능할것이다.
하지만 만약 많은 사람의 욕망을 단순화 시키고 획일화 시킬수 있다면 어떨까?

내가 사업가라면 내가 파는 물건이 다수의 욕망의 대상이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일은 없을것이다.
대량생산과 사람들의 소비를 통해 나는 부를 축적해 나갈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부의 축적은 곧 권력이요, 힘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려면 소비자들의 욕망을 획일화 시켜야 한다.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와 뚜렷한 개성은 나에게 있어 너무나 골치아픈 일이다.

내가 주체와 대상 사이의 중개자이고, 그리고 어떻게든 부와 힘을 얻고자 한다면,
주체의 욕망의 대상을 내가 원하고자 하는쪽으로 암시를 할것이며,
더욱 더 많은 주체에게 간섭을 하여 암시를 할것이다.

힘있는 대기업들이 괜히 미디어를 장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스타 시스템을 만들고,
그 스타들을 앞장세워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아닐것이다.

권력층에게도 마찬가지다.
권력층이 만들어놓은 획일화된 목표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목을 멜수록 그 권력은 더욱 견고해진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성과 특성을 인정하는 순간 권력은 분산될수 밖에 없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이것이 지금 교육현실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획일화란 작업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다르게 해석하면 세뇌작업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획일화나 표준화가 꼭 필요하거나 더 효율적인 상황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원치 않는 부분에 있어 악용될 수도 있다. 현대 시대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권력층이 절대 포기할수 없는 분야가 바로 교육분야이다.
그리고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가 또 교육분야이기도 하다.
아무리 사교육이 다양하게 발전한다고 해도, 교육의 중심에는 공교육이 있고,
이 공교육이 중심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대학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대학 시스템의 중심에는 위에서 거론한 시험점수가 있고, 이어 서열화가 있다.

그리고 이 대학 시스템의 서열화가 가능한 이유는 권력층이 자신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사회적 구조가 있고,
그 마지막에는 권력이 획일화 시켜놓은 욕망을 쫓는 우리가 있다.


W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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