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대다 끄적이다.

[워낭소리] : 딸랑~각박해지는 삶에 찬찬히 적셔드는 가랑비 소리.. 본문

주절주절/영화

[워낭소리] : 딸랑~각박해지는 삶에 찬찬히 적셔드는 가랑비 소리..

한그리 2009. 2. 15. 18:17

워낭소리
감독 이충렬 (2008 / 한국)
출연 최원균, 이삼순
상세보기




딸랑~딸랑~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워낭[각주:1]' 소리가 잔잔히 울린다. 이 소리는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귓가를 맴돌다 마음속까지 울린다. 대체 이 '워낭'이 뭐길래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가랑비에 조금씩 조금씩 몸이 젖듯 울리는 걸까?

한국 독립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60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사실 [워낭소리]가 입소문을 타지 않고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개봉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좋은 작품을 놓칠뻔 했을 것이다.

영화는 다큐멘타리 형식이다. 비슷한 느낌의 영화를 떠올리라면 [집으로]가 있는데 [집으로]는 말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연출된 영화이고, [워낭소리]는 실제상황들을 찍고 편집한 다큐멘타리다.
내심 어떻게 사람과 소의 이야기를 인위적인 스토리라인 없이 다큐멘타리로 관객들에게 어필할수 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 어떤 스토리보다 마음에 와닿는 훌륭한, 말 그대로 '진짜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원본크기로 보기

소의 평균 수명은 15년 이하, 하지만 사람의 사랑과 끈끈한 정으로 40살이 다되어가는 소...


소의 평균 수명은 15년 이하라고 한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소는 40년 가까이 살아가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영상으로 봐도 노쇠해 보이는 소...대체 어떻게 이 소는 평균수명의 3배 가까이 살 수 있었을까?

거기에는 바로 영화의 주인공이자 소 주인인 최원균 할아버지의 사랑이 있었다. 소와 인연을 맺은 30년동안 이 할아버지는 '소' 없는 생활은 생각해보지도 못했을 정도로 소를 끔직히 아끼고 사랑하고 계셨던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있어 소는 일꾼이며 교통수단이며 동료이며 자식이며 동반자이며 또 그 자신이였던 것이다.

이렇게 사람보다 더 한 사랑과 신뢰, 그리고 정으로 맺어진 인연은 평균수명이라는 사람들이 계산해낸 숫자를 비웃듯이 그 줄이 끊기지 않고 서로 기력이 쇠진해가는 와중에도 계속된다. 특히 남들은 기계에다 농약까지 뿌려가면서 농사를 짓는 와중에도 할아버지는 오직 소를 위해 농약도 마다하고 직접 손으로 밭을 가신다. 이 정도 정성이면 소가 40년 가까이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충분히 이해할수 있다.

원본크기로 보기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소를 위해 꼴을 모아오는 할아버지의 정성이란....


잔잔함 속에 재미를 주는 이삼순 할머니


이런 잔잔한 일상을 그린 다큐멘타리 영화에서 웃음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적어도 [워낭소리]에서는 그런 욕심을 가져도 충분할 듯 싶다. 바로 최원균 할아버지의 부인되시는 이삼순 할머니때문이다.

할머니는 등장에서부터 끝까지 불평불만을 늘어놓으신다. 하지만 이런 불평들이 여간 재밌는것이 아니다. 각본에 의한 대사가 아닌 마음속에 담긴, 삶에서 고스란히 나온 불만들은 너무나 현실적이며 평소에 우리의 어머니들이 하시는 불평들과 너무 흡사해 설정에 의한 재미가 아닌 '진짜 재미'를 준다.

단순히 한번 웃고 끝날 웃음이 아닌 마음속을 간지럽혀 슬그머니 미소를 띄게 하는 '진정한 웃음'을 선사한다. 이삼순 할머니가 하시는 불평불만은 진심이지만 그것 또한 자신이 함께 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나온 것임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본크기로 보기

사람과 소의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진짜 우리 이야기...


[워낭소리]는 사람과 소의 이야기가 중심축을 이루지만 그 이야기 안에 진짜 우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원균 할아버지는 과거 우리의 아버지들을 대표하고 있다. 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소에게서 난 과거 뿐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이 보였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평생 해나가는 모습....비록 말은 못하지만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며 자신의 일을 하는 모습이 말이다.

이삼순 할머니에게선 대한민국의 어머님들의 모습이 비춰보였다. 불평불만이 많지만 옆에서 포기하지 않고 다 이겨내며 도와주는 모습, 가족을 챙기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 평소에 불평이 많지만 그것이 사랑의 한 표현인 모습들이 말이다.(소에게 빨리 죽어라 죽어라 하시지만 막상 소가 죽으니 굉장히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비록 말 못하는 동물일지라도 사람과 무한한 교감을 나눌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알려준다. 영화를 보고 다시 채식을 시작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물과 생명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만들어 준다.

원본크기로 보기원본크기로 보기

자극적인 소재에 자극적인 영상이 난무하는 요즘 이렇게 잔잔하고 마음을 천천히 적셔주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가 흥행하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한가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은 이렇게 영화 흥행을 하는 가운데 처음 이 영화와 함께 해온 예영관 마지막회에 관객이 단 7명뿐이였다라는 점이다. 참 아쉬운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각창'님의 블로그에 있는 '워낭소리 40만과 회당 7명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는 신드롬의 이면'에 아주 잘 나와있다.

[워낭소리]가 100만 관객을 돌파해 많이 힘들어진 한국 독립영화에 큰 힘이 되길 바란다.


WoonG

  1. 워낭[명사] 1 마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 또는 마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 [본문으로]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