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대다 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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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잡생각

평행선과 원 : From Parallel to Circle

한그리 2012. 1. 11. 19:28

우리가 보통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사는데 있어 언제나 갈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바로 인연이란 카르마를 극복하는 핵심이 된다. 그래서 그려본 도표인데 이것은 그냥 내 관념에서 나온 것이니 옳다고 주장할 생각도 없거니와 헛점투성임을 인정한다.

일단은 총 4단계로 나누어봤고, A와 B는 각각 다른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선(line)은 각자의 의견이라 해도 좋고 성격이라 해도 좋고 고집이라 해도 좋고, 에고(ego)라 불러도 좋다. 난 에고선이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이 에고선(ego line)의 각 끝에는 마음과 생각(관념 혹은 이성)이 있다. 우리의 성격을 형성시키는 것에는 크게 이렇게 두가지가 있다고 판단해서이다.

A와 B의 관계는 우리가 관계를 맺는 모든사람이 될수도 있다. 그러니까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형제관계, 사제관계, 연인관계, 친구관계, 부부관계 등등 모든관계가 될수 있다. 그런데 아마도 연인관계나 부부관계를 기준으로 보면 이해가 가장 잘 될듯하다. 그리고 말이 단계이지 꼭 이 순서로 나가진 않는다. 3단계에서 1단계로 가기도 하고 그럴것이다.

1번은 관계에서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의 시작이다. 생각에서조차 서로가 이해가 되지 않는 단계이다. 보통 "우린 생각이 너무 달라." 하는 것들이다. 서로의 의견이나 생각이 만나는 점을 합의점이라고 한다면 도무지 합의점이 찾아지지 않는 단계이다. 평행선이다. 이 에고선이 B와의 관계에 있어 그닥 큰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는다면 그러려니 넘어간다. 그러나 이것이 내 생활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이것이 계속 평행선으로 가야만 한다면 B와의 관계는 한계성을 보이게 된다.

자, 그럼 이제 2번으로 넘어가보자. 우리는 관계에서 갈등이 생길 경우 본능적으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리고 보통은 2번의 그림처럼 관념적으로 A가 양보하거나 B가 양보하거나 아니면 둘다 양보를 하여 합의점에 도달한다. 여기서 에고선의 특성이 하나 있는데 이 녀석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생각에서 움직이면 마치 탄성이 있는 얇은 철막대기처럼 언제 다시 튀어오를지 모른다.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지 않고 관념적으로 양보를 하게 되면 결국 눌러 참는것 밖에 안되는 것이다. 그나마 관념적으로라도 A와 B가 서로 양보를 하게되면 그 구부림이 서로 더 적어지기에 그만큼 반작용은 반감된다. 우리는 보통 이 2번을 택하면서 관계형성을 한다. 그냥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연인과 부부관계에서 이런 경우가 많다. 그러니 결국 빠빠이, 이혼을 하게 된다.

3번으로 가보자. 개인적으로는 이 3번만 되어도 훌륭하다고 본다. 3번의 경우는 관념뿐 아니라 마음으로부터도 한 사람이 완전히 양보를 하게 되는것이다. 그림에서처럼 A가 적어도 B에 대해서는 완전히 이타적이게 되는것이다. A의 사랑이다. 이타적이 된 A의 에고선은 곡선이다. 직선은 아무것도 담을수 없지만 곡선은 담을수 있다. 그리고 더 이타적이 되어 그 구부림이 더욱 커질수록 곡선의 깊이는 깊어지고 더 많은 것을 담을수 있게 된다. 그러나 3번의 경우도 문제점은 존재한다. 여전히 합의'점'이 2개가 존재한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B가 그 점을 양쪽에서 잡고 있지만 놓아버리면 A의 모양마저 반작용으로 인해 모양이 흐트러질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처럼 이 경우는 반원, 즉 반쪽인것이다. 그러니 짝사랑이 아무리 온전하다 할지라도 짝사랑일수밖에 없는것이다. 이런 경우는 보통 내리사랑이라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제 마지막에 왔다. 4번으로 가보자. 그림만 봐도 알수 있다. A와 B가 적어도 서로에게 있어서는 마음으로부터 서로 양보를 하는것이다. 마음이 양보가 되면 생각은 필요하지도 않다. 마음이 양보하라는데 뭘 생각을 해?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히 이타적이게 되는것이다. 온전한 원이다. 원은 순환구조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리고 점이 사라졌다. 합의점 따위는 필요없다. 원은 혹은 0(공, zero)는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걸 담고 있다. 결혼식에서 주례샘이 말하는대로 A와 B라는 두 주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온전한 사랑이다.

사실 A 혼자서도 마음과 생각을 일치시켜 동그란 원을 만들수 있다. 다만 그 원은 딱 자기그릇만큼 작고 자기중심적(self-centered)이다. 이것이 수련자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라 보고 있다. 물론 나를 먼저 이해해야 세상이 이해가 되는것은 맞다. 그런데 이 이해를 하는 과정에 있어 현실에서 나의 인연들과 부딪혀 보면서 확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A가 B를 만나 4단계까지 오면 그 원은 A 혼자 구성한 원보다 크다. 그리고 이것을 C, D, E 등으로 확장해 나가면 결국 그 원의 크기는 어마어마해질것이다. 이것이 나->가족->이웃->사회->국가->민족->인류->지구->우주 이렇게 확장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괜히 붓다가 모든 인연을 소중히 하라고 한게 아닐것이며 예수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한 것이 아닐것이다.


W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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